사실은 올해 안에 운행 안 할 줄 알았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北의 입장은 흐릿해 보이지 않았,
비핵화 협상은 지연되는 열차 같았으며
대북제재는 매우 굳건하기에 못 할 줄 알았습니다.
본디 굳건한 게 좋은 것이다

그런 정치적 상황 때문인지, 지난 8월에 시운전 시도를 했으나
UN군 사령부가 불허해 운행되지 않았습니다.

(운행 취소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새벽에 찍으러 나갔다가 허탕친 기억이 나네요.)



그러던 와중에, 남북정상회담에서 철도 관련 개량에 합의하는 내용을 담은 선언이 나왔고,

이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평부선(평양~판문)평의선(평양~신의주청년), 평라선(평양~라진) 조사하기 위해
남북철도 현지 공동조사단이 구성되어 우리 측 조사단이 열차로 방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언론 보도로 접한 것은 불과 열차 운행 이틀 전의 일입니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새벽의 찬 바람을 뚫고 경의선 운천역에 도달한 것은 해가 뜰 무렵이었습니다.

적막한 승강장 너머로, 점차 동이 트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요.


























운천역은 수도권에 단 두 곳밖에 없는 임시 승강장입니다.


철도청 시절인 2001년에 개업해 지금까지도 줄곧 버스 승차장 같은 모습을 유지해고 있는 무인역이죠.


안내 표지판을 볼 때 운천역은 임진강역에서 관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DMZ(비무장지대) 근접한 역이다 보니, 쉽게 떼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DMZ는 약 70여 년간 인간들의 손이 닿지 않은 청정지역이라고 하더라고요.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아침해가 활짝.

사실 겨울이 해가 짧은 계절이라 이른 시간에 잘 촬영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밝은 환경에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일출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뿌와왕~이라는 경적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순간 열차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해 카메라를 들었고,

열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일 때 즈음 역앞 건널목의 차단기가 내려갔습니다.



















경의선 임시열차
특별 #7***열차 서울(06:30) → 신의주청년(**:00)
(판문경유)


경의선에 끝에서 끝까지. 경원선의 끝에서 끝까지.
약 10년 만에 운행되는 남북철도 공동조사단 열차입니다.

조성이나 열차 종별, 운행 구간과 목적을 모두 고려해볼 때 굉장히 귀한 장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열차는 경의선 내 최고 순위를 부여받아(새마을호 이상으로 추정),
경의선 내 모든 열차는 이 열차를 먼저 보낸 후 출발했다는 썰(?)이 있기도 했습니다.












당시 통과 영상입니다.




















잠시 조성을 따로 보면, 맨 앞에 유조차와 300kW급 발전차가 연결되었고,
그 뒤로는 무궁화호 객차와 침대차 연결되었습니다.

특히 침대차는 국토교통부가 2015년 말 내린 운행 중지 명령 이후
처음으로 본선 운행에 투입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객차들 뒤로는 침식차와 유개화차 1량씩이 연결되어 운행되었습니다.

"철마가 달린다! 평화번영의 미래로!"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침식차는 여느 침식차와는 달랐습니다.
도색을 좀 더 짙은 색으로 했고, 지역 본부 소유가 아니라는 듯 코레일 로고만 붙어있었습니다.

사실 조사 열차로 편성된 모든 열차가 굉장히 좋은 상태였었죠.

















열차는 여러 번 경적을 울리며 운천역을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저는 임진강역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 승강장을 보니 역시나 열차가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잠시 확인을 위해 정차한 듯한데, 덕분에 열차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칠한지 얼마 안 된 듯 반질반질한 유조차와 디젤전기기관차.

이 날은 7482호 디젤전기기관차가 북한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판문역에서 되돌아오지만요...




















[서울 ↔ 신의주]


조사 열차를 위해 특별 제작된 행선판으로, 열차 이름이 없고 그저 이 다섯 글자만 적혀 있었습니다.

무궁화호에 이런 행선지가 꽂힌 모습을 보니 조금 어색하면서도 신기하네요.


















"남북철도 현지 공동조사 착수"

무궁화호 객차의 측면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편성 중에서 무궁화호 객차와 침대차만 놓고 보자면,
철도청 시절의 무궁화호 야간열차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객차와 침대차가 함께 조성되었으니까요,















얼마 후에 열차는 임진강역을 떠나 도라산으로 향했습니다.

영상을 보시다 보면 말미에 희미하게 멜로디가 들리실 텐데요,
다름 아닌 제 휴대폰 알림음(...)입니다. 보통 저 때 일어나니까요.

좀 듣기 싫다 하시는 분은 [이 영상을 봐 주세요.]








어차피 언젠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니 무사히 다녀오셨으면 하는 바람이고,

이번 조사가 유라시아 대륙철도와 평화를 여는 침목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촬영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네이버 최초작성] 2018.12.06
[블로그 이관] 20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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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Mirae

일본을 좀 자주가는 반도의 흔한 학생. / 티스토리 Since 2017.01.01 / 유튜브 W. Mirae / 네이버 dylan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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